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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진료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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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지역 무료진료 리스트보기

목적

의료원은 해마다 발생하는 장마철 집중호우로 인해 가옥과 전답 등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진 수재민들을 찾아가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수재민들에게 심신의 건강을 되찾고 재활의지를 갖추게 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짐과 동시에 나아가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국민보건의료 향상에 기여한다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설립 이념을 구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개요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수해로 인한 피해규모가 커 수해주민에 대한 무료진료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각 병원 혹은 의료원 단위로 기획되어 시행되고 있다. 비정기적이고, 예정되지 않은 진료라 병원과 의료원의 신속한 대응과 협조가 요구되며, 의료진이나 지원 의약품의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이 지칠 수 있으며, 일정 또한 하루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의 체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파견 임상과 의료진에서 선발된 단장이 진료팀을 총괄한다. 진료장소는 각 병원 사회사업과에서 선정하고 있다. 사회사업과에서는 장소 선정 시 해당 군, 구청 및 보건소를 통해 수해로 인한 피해상황과 복구사항, 사회적 관심도 등을 파악한 후 피해규모는 크나 사회적 관심이 떨어져 진료의 필요성이 절실한 장소로 결정하게 되며, 장소가 결정되면 일정을 정하고 진료팀을 구성하게 된다. 수해지역 무료진료에는 평균 4개 과 이상의 진료과에서 의료진이 지원을 가게되며,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행정 지원 인력 등이 진료팀에 합류하여 지역 병원 및 보건소와 연계하여 진료를 실시하게 된다.

지난 2002년 여름 태풍 '루사'가 전국을 강타한 이후 정선읍에서 실시된 수해진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건소가 물에 잠겨 의약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전해들은 의료원에서는 8일간 실시된 장기간의 진료를 통해 총 1,974명의 수해지역의 주민에게 2,296건의 진료와 투약 서비스를 실시했다.

이처럼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매달 실시하는 순회무료진료와 달리 의료진 등 지원 인력이나 지원 의약품의 규모가 크고,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기 때문에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이 지칠 수 있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의료원으로서 곤경에 처한 수재민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실적

최초의 수해지역 무료진료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의 모병원인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개원 초기부터 시작됐다. 최초의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1974년 9월 7일부터 9일까지 전라남도 영암 수해지구에서 이루어졌다. 1974년은 7월부터 9월까지 태풍 ‘길다(Gilda)’, ‘진(Jean)’, ‘폴리(Polly)’ 등이 남부지역, 서해안, 동해안에서 각각 발생해 전국을 집중호우로 휩쓸었던 해였다.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순회무료진료를 하고 있던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9월에는 수해지역으로 무료진료를 나갈 계획을 세우고, 내무부에 수해로 인한 피해가 심한 장소를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내무부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전국적이긴 하나 그중 전라남도의 피해가 심각하니 전라남도에서 무료진료를 해 줄 것을 요청했고,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에서 전라남도 도청으로 수해지역 무료진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자 도청에서는 피해가 특히 심한 영암군에서의 무료진료를 요청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수재민들에게 나눠줄 약품과 학용품 등을 챙긴 진료팀 일행은 변경원 일반외과 과장, 정우갑 소아과 과장 등 의료진과 간호사 2명, 약사 1명, 새마을상록회 영등포구 회원 4명으로 진료팀을 구성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새마을상록회 서울시 회장이 함께 봉사하고 싶다며 진료팀에 동참했다.

한편 진료팀은 서울역에서 급행열차를 탔는데 수재민들에게 나눠 줄 약품과 학용품이 너무 많아 짐 싣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열차출발시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서울역장이 직접 나서서 약품과 학용품 싣는 것을 도와줬으며, 서울역장은 영산포에서의 하차를 걱정해 영산포역장에게 급전을 띄워 진료팀이 약품과 학용품을 다 내릴 때까지 열차 출발시간을 지연시킬 것을 지시하는 등 진료팀을 도와주었다.

진료팀을 도와준 건 철도청뿐만이 아니었다. 진료팀은 영산포에서 진료장소까지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나르나" 고민하며 영산포역에 도착하니 전남도청에서 대형 트럭 2대를 준비해서 진료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진료팀은 무난하게 예정된 장소에서 수재민들을 진료할 수 있었다.

수재민들에 대한 진료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영암군에는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에서 무료진료를 나오기 이전에도 다른 무료진료팀들이 방문했는데, 이들이 성의를 보이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진료를 한 탓에 주민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려 고민하던 진료팀은 마침 심한 감기와 탈수 증상을 보이던 유아가 진료를 받으러 오자 침상에 눕히고 머리에 주사바늘을 꽂아 링거를 맞혔다. 보통 링거는 팔뚝에 맞는 것이 정상이나 간혹 혈관을 찾기 어려운 유아들은 머리나 목 부분에 링거를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장면을 본 주민들은 “진짜 의사들이 찾아왔구나” 하며 그때부터 구름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료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고, 주민들은 늦은 밤까지도 진료에 매진하는 진료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2박 3일간의 진료에 525명의 수재민들이 진료를 받았고, 피부질환과 소아질환을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순회진료팀장은 "일반외과 변경원 과장은 진료 외에도 16건의 크고 작은 수술을 시행해 주민들의 감사사례가 끊이지 않았으며, 9월 8일 진료를 마친 후에는 도청에서 준비해 준 차량 덕분에 영등포까지 피곤한 몸을 쉬면서 편안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두 번째 수해지역 무료진료와 대통령의 하사금

수해지역 무료진료에 대해 남아 있는 두 번째 기록은 1977년 영등포구 시흥 2동의 수해지역 무료진료이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1977년 7월 9일 긴급 의료팀을 구성하여 영등포구 시흥 2동 수해지역에서 구급진료를 펼치고 식빵 500개를 전달했다. 이후 성심자선병원 부원장이었던 윤대원 現 이사장과 수련의사 1명, 간호사 5명으로 무료진료팀을 구성하여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탑동국민학교에서 300여 명의 수재민을 무료로 진료했으며, 목침대 100개를 대여했다는 기록이 현 성심월보의 전신인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월보에 남아 있다.

수해지역 무료진료에 관한 세 번째 기록 역시 성심월보에 남아 있는데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에서 1984년 9월 3일 영등포구 양평 1동에서 폭우로 인한 수재민 140여 명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강남성심병원의 무료진료팀은 대통령으로부터 하사금까지 받았다.

이렇듯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수해지역 무료진료는 각 병원의 개원 초기부터 수해가 일어날 때마다 시행됐으나,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성심월보에 기사로 남아 있는 기록에 의존해 그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기록이 남아 있는 수해지역 무료진료실적은 총 24회에 걸쳐 324명의 진료팀이 8,665명의 수해주민을 무료로 진료했으며, 63,549,482원을 의약품과 경비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