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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진료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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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촌 진료 리스트보기

목적

의사가 없거나 의료시설이 없어 의료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무의촌을 찾아가 무료진료를 함으로써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대 국민보건의료사업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국민보건의료 향상에 기여한다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설립이념을 구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개요

무의촌 진료는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설립 때부터 시작되었다. 의술이 아닌 인술을 펼치고자 했던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설립자이신 故 윤덕선 박사는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개원 이전부터 그의 절친한 친구가 신부로 있던 백령도 등지로 무료진료활동을 다녔으며, 1971년 12월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개원 1년 후인 1973년 1월부터 매년 동계 하계 무의촌 진료를 실시하였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이 개원한 1971년 12월 당시 정부는 무의촌 주민들에 대한 의료수급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며, 급기야는 수년간에 걸쳐 전국의 레지던트들에게 6개월간 무의촌 강제근무를 명하기도 했다. 이는 레지던트들의 전공의 과정 4년 중 6개월을 무의촌에서 근무해야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어 레지던트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6개월간의 무의촌 근무가 요구된 것이었다. 이후 정부에서는 무의촌 지역의 의료수급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1981년부터 공중보건의사를 무의촌 지역에 배치하기 시작하였고, 1983년 12월 경남 창녕군 도천면을 끝으로 총 1,503명의 공중보건의사를 무의촌 지역에 배치 완료함으로써 무의면(無醫面)을 완전 해소하였다.

이후 한림대학교의료원은 비록 무의촌은 아니나 지리적인 여건으로 여전히 의료수급에 어려움이 있는 강원도 일원으로 무의촌 진료를 계속했으며,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에서 주로 무의촌 진료를 담당했다. 또한 춘천성심병원은 1996년부터는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자원봉사단 학생들과 함께 매년 정기적으로 하계 무료진료를 실시하며 강원도의 무의촌에 인술을 베풀고 있다. 이와는 달리 강남성심병원은 1999년에 KBS와 공동으로 무의촌 지역으로 무료진료를 나간 기록이 있어 함께 남긴다.

실적

한림대학교의료원은 지난 2002년까지 총 33회의 무의촌 진료를 통해 578명의 진료팀이 35,482명(실인원)의 주민들을 무료로 진료하였으며, 58,829,084원의 비용을 사용했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이 최초로 다녀온 무의촌은 1973년 1월에 방문한 충청남도 천원군 수신면이다. 천원군 수신면 무료진료에는 11명으로 구성된 진료팀이 403명의 주민을 진료하였고, 1,170,035원을 약품비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진료기록 통계에 남아 있다.

두 번째 무의촌 진료장소 역시 충청남도 천원군 일원인데, 이듬해 여름인 1974년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1주간의 진료를 통해 18명의 진료팀이 2,496명의 주민을 진료하여 총 1,089,390원의 약품비를 사용했다. 당시 보고서에 의하면 진료팀 18명 중 9명은 북면 13개 리에서 고정진료를 펼쳤고, 나머지 9명은 수신면 속창리, 목천면 덕천리, 동면 동살리, 병천면 봉황리, 복다회리 등 4개 면 5개 리로 이동진료를 다녀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료인원은 총 2,469명이며, 이 중 19명에게 종양절제, 절개배농, 성형수술 등 19건의 수술을 해 주었으며, 치과진료에서 330명을 발치하고, 32명에게 절개수술을 하는 등 총 381건의 수술실적이 있었다. 또한 이들과 별개로 510명의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기생충 검사를실시하여 구충사업에도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진료팀은 숙소가 없어 북면 오곡리에 위치한 천북국민학교 교실 3개와 민가의 방 4개를 빌려 숙식을 해결하였으며, 18명의 진료팀 외에도 지역사회의학 조사연구팀 12명, 풍토병 조사연구팀 9명 등 총 42명이 함께 무의촌 진료, 의료실태조사, 풍토병 연구 등의 목적으로 다녀왔음을 알 수 있어, 당시 무의촌 진료가 1회성 진료에 그치지 않고 보다 체계적인 보건 향상 및 의료혜택을 주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